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Why Fish Don't Exist 의 독후감 입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한줄평 / 별점 : 이 세계 안의 다른 세계들을 기꺼이 발견하고, 거침없이 포용하며 서로 사랑해야지. (★ ★ ★ ★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추천대상 / 소요시간
추천대상 : 물질 만능주의와 경쟁에 지친 현대인들과 세상이 정상 범위라고 규정한 범위에서 벗어난 비주류의 사람들. 사실 전연령 누구나에게 추천하고 싶음
독서 소요 시간 : 하루에 2~3시간씩 읽어서 일주일정도 걸림
이 책은 올 해 2024년도 상반기에 읽은 책 중에서 제게 가장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반전도 있고 워낙 호불호가 갈리는 책인만큼, 책의 명성과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는데 우연한 계기로 읽게 되었답니다. 제게 너무 좋은 책이었어서 독후감도 잘 쓰고 싶은 마음에 아끼고 아끼다가 거의 잊혀질 지경에 이르렀고.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노트북을 열어봅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줄거리(스포 주의)
책의 주인공이자 서술자는 어린 시절부터 딸에게 '너는 중요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유별난 아버지를 두었습니다. 게다가 소심한 탓에 적응하기 힘든 학교 생활, 절망과 우울감으로 인해 삶의 무게를 견디기 어려워했습니다. 심리적인 문제를 안고 세상을 겉도는 언니를 마주하는 고통이 지속되며, 끝내 삶의 의미를 찾지못한 채 어린나이에 다량의 수면제를 삼킵니다.
다행이도 자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녀는 성인이 된 후, 남자친구에게 자신이 충동적인 계기로 다른 여자와 바람을 핀 것을 토로합니다. 남자친구는 신뢰를 잃은 그녀의 곁을 떠나고, 그녀는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놓쳐 다시금 생을 마감하고자 하는 욕구를 불쑥불쑥 느낍니다.
그녀는 죽으면 그만인데, '왜 고통스러운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됩니다. 이 때 우연히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과학자 이야기를 발견하게 되는데요, 그는 이미 사망한지 오래였지만, 여러 생물 종에 대한 발견과 직접 해부하지 않고서는 결정을 내리지 않는 정밀한 연구 성과와 방식들로 이미 학계에서 인정받은 과학자였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조던이 그녀의 마음을 본격적으로 사로잡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샌프란시스코 지진이었죠.
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두드러지는 성과 중 하나는 아직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물고기들을 바다나 강에서 채집하고 분류하고 연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물고기를 채집해 하나하나 해부하고 분류하고 이름을 붙여주고, 어떤 특성을 가졌는지 종을 기록하는 과학자였죠. 그렇기에 대학교 연구소 내에도 수많은 물고기들이 방부제가 담긴 유리관에 담겨있었습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그 강진으로 인해 수 많은 물고기 표본들이 파괴되거나 훼손되었습니다.
조던은 자신의 일생일대의 업적이 무너지는 충격에 휩싸인것도 잠시, 우선 이름을 확신할 수 있는 물고기들에 우선적으로 이름표를 붙이기 시작합니다. 다시 큰 지진이 온다해도 절대 떨어지지 않을 이름표를요. 하지만 이미 방대한 자료에 손상을 입었습니다. 그는 좌절할 겨를도 없이 계속해서 연구 재건에 몰입합니다. 심지어는 방부제가 대학교에 도착하기 전 물고기 표본들이 썩지 않게 하기위해 계속해서 어마어마한 양의 물을 연구실에 뿌려대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노력과 여러 차례의 고난 끝에 그는 물고기 분야에서 집대성을 이뤄 큰 성과를 이룩합니다. 이와 같은 그의 끈기와 재도전 정신은 이 책의 작가에게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실마리가 되어주기도 하고, 그의 학문적인 열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남습니다. 그가 절망과 혼란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의미를 찾고자 하는 모습에 영감을 받은 작가는 조던에 대해서 더욱 깊게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이 때 첫번째 반전이 나옵니다.
첫번째 반전(스포주의)
진화학과 생물학을 기반으로 여러 종들을 연구하는 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여러 동물들 중에서 인간이 가장 우월한 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지금도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있는 생각이죠.
하지만 진화론에 심취해있던 그의 생각은 선을 조금 더 넘었습니다. 같은 인간들 내에서도 더 우월한 특징을 가진 종이 있고, 열등한 특성을 가진 종이 있기 때문에 이를 끊임없이 개량해 우월한 인종만을 남겨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었죠. 맞습니다. 그는 미국의 우생학을 선도하는 과학자였습니다.
사람들이 독일에서나 진행됐을거라 생각한 우생학의 손길이 미국에서도 알게 모르게 그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의 시대상으로는 그의 우생학 정책이 많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지금에서야 비윤리적이고 비인권적인 행위로 평가가 되었지만 말이죠.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던 작가 룰루 밀러는 과학자 조던이 일명 '우성 인자'로 인정되기에 부적절/부적합 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강제 불임 수술을 시행하는 정책에 찬성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러한 우생학적 정책을 널리 알리기 위해 강연과 저술 활동을 하기며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동의를 받았습니다.
그의 행보에 충격에 휩싸인 작가는 거기에서 조사를 멈출 수 있었지만, 본인이 알게된 사실에 대해서 세상에 알려야 하는 사명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조던이 너무나 유명하고 존경받았던 나머지, 그의 이름을 딴 건물이 있을 정도였으니깐요. 그녀는 미국의 우생학 수용소를 조사하며 그 시절 '부적합' 딱지를 받아 어린 시절 강제로 불임 수술을 당한 애나를 만납니다.
수용소에서는 온갖 이루말 할 수 없는 악행이 자행되었습니다. 모두 우생학의 이름 하에서는 그래도 괜찮은 것 처럼 여겨졌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할머니의 나이가 된 애나이지만, 그녀는 어릴적부터 아이를 갖고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너는 아기를 낳아서 잘 기를 수 없는 사람이야'는 얘기도 듣고, 강제로 불임 수술을 당하게 되죠. 그 후 함께 해당 수용소에 있던 여자아이 메리와 수용소를 탈출하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 메리는 아기를 갖게 되는데요, 이 때 애나가 아기를 함께 돌봐줍니다. 그 아기는 잘 자라서 어엿한 성인이 되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고 있습니다. 부적합 딱지를 붙였던 사람들의 우려와는 다르게 자신의 몫을 잘 해내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던 것이었죠. 둘은 서로의 기쁨이고 행복입니다. 그들의 주변에는 그들이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지지대가 되어주는 사려깊은 이웃들도 있습니다.
마치 누군가는 들판에 마구잡이로 피어나 하찮다고 여길 들꽃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약초가 되어주는 민들레처럼 말이죠. 이에 작가는 굉장히 분노합니다. 자신들의 '우월함'이라는 잣대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다른 소중한 것들을 전부 '열등함'이라고 치부해버리고, 그들의 자립 의지를 인정하지 않고, 그들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과 이 수용소, 그와 뜻을 함께한 사람들에게 말이죠.
더불어 작가는 오히려 애나와 메리, 그들에게서 삶의 의미를 배웁니다. '넌 중요하지 않아' 라고 말하던 아빠의 오래된 문장에 맞설 수 있는 단 한문장을 알게 된 것이죠. 그것은 바로 '우리 모두의 삶은 소중해' 였습니다.
그런데, 아직 두번째 반전이 남아 있습니다.
두번째 반전(스포주의)
과학자로서 큰 위상을 떨치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큰 업적이 '어류'를 분류하고 규명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실겁니다. 하지만 같은 과학계 중 하나인 '분류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의해 조던이 열심히 규명하던 '어류'라는 것은 사실상 없는 분류체계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어떤 물고기는 다른 물고기종보다 외려 들판 위의 소와 더 가까운 종인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이제서야 이 책의 이름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인 이유가 나옵니다. 이는 마치 저 바다 속 심해어 하나가 육지 위를 흘끗 보고는 아, 인간도 지렁이도 강아지도 모두 육지 위에 살고 있으니 저것들은 모두 '육지류'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던 것이죠.
이를 통해 데이비드가 그토록 자신의 의견을 고수하며 일생을 바쳐온 '어류'에 대한 분류와 규명은 전면적으로 틀렸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바닷속 세상에 대한 이해를 거부하고, 그들을 한통속으로 묶어 그저 '물고기'로 치부한 것이죠. 이는 우성을 제외한 모든 성질을 열성으로 묶어 '부적합'이라고 치부했던 모습과 퍽 닮아 있습니다. 이와같은 발견으로 인해 데이비드 조던은 그가 그토록 염원하던 과학에 한 방 먹게 된 것이죠.
작가의 말대로 '생물의 지위를 나누는 단 하나의 관점'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잘나가던 과학자 조던의 일대기가 그러했듯이, 아픔을 안고 서로 돌봐주며 행복과 기쁨을 느끼는 애니와 메리, 그들의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이웃들, 무자비하게 어류로 분류된 물고기 하나하나까지도 모두 소중하다는 것을 상기하며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은 작가와 그녀의 아름다운 여자친구에 대한 찬사와 함께 이 책은 끝이 납니다.
느낀점
마치 잘 만들어진 장편 영화를 본듯이 이 책을 보고는 꽤나 긴 울림이 있었습니다. '다른 세계는 있지만 그것은 이 세계 안에 있다' 라는 말은 이 소설을 관통하는 아주 좋은 문장입니다.
민들레를 길가에 핀 들꽃으로만 보는 세상에서 조금만 관점을 돌리면 약초가 되는 세상을 만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둘은 요원한 세상이 아닙니다. 온전히 같은 세상인것이죠. 마치 불교의 가르침처럼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꾸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최근 한국사회는 '돈'을 가장 중요시 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었다고 하죠. 우생학에서 '부적합'의 꼬리를 달아주는 기준은 인종, 외형, 장애의 유무 등 다소 다양한 관점을 기준으로 합니다. 하지만 소득은 '숫자'로써 더욱 직관적이기도 하고, 사람들을 단 하나의 잣대로 구분 짓기 아주 쉽고 명확한 기준이 됩니다.
월 몇백을 못벌면 '도태남'이다 와 같은 말이 너무도 쉽게 나오는 세상이라 오늘도 이 나라 사람들의 우울감은 커져만 갑니다. 그런 촌스럽고 진부한 기준 들이대기를 멈추고, 또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서로의 소중함을 잊지 말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